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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순이 일상

백수가 된 방송작가는 건강검진을 한다. KMI 한국의학연구소에서!

by 집작가 2023. 1.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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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일을 처음 시작했을 때만 해도 시즌제라는 개념이 없었다. 프로그램에 한 번 들어가면 내가 그만두거나 혹은 잘리기 전엔 계속 일을 할 수 있었다. 그런데 몇 년 전부터 시즌제 혹은 회차가 정해진 프로그램이 늘기 시작했다. 그에 따라 원하든, 원치 않든 프로그램이 끝나면 백수가 되는 일이 잦아졌다.

 

그래서 나는 또 백수가 됐다. 그나마 다행인건 다음에 할 프로그램이 정해져서 평소보다 조금 맘 편한 백수라는 점이다. 끝이 있는 백수랄까. 막내 때는 이렇게 주어진 백수 기간에 놀기 바빴는데, 나이가 먹어갈수록 건강을 챙기는 시간으로 쓰게 된다. 이번 백수 기간에는 작년에 미뤘던 '건강검진'을 하기로 했다. 

 

방송작가는 어느 정도 경력을 채우면 '한국방송작가협회'에 가입할 수 있는데, 이곳에 가입을 하면 연계된 센터에서 무료로 건강검진을 받을 수 있다. 건강검진은 2종류로 1년에 한 번 일반검진 or 2년에 한 번 프리미엄 검진 중에 선택할 수 있다. 나는 작년에 건강검진을 못 받았으므로 이번에 프리미엄 건강검진을 선택했다. 

 

검진 센터는 KMI 한국의학연구소로 정했다. 계절이 바뀌거나 음식을 잘 못 먹으면 피부에 알러지 같이 붉은 게 올라오는데, 한국의학연구소 검진 항목에 '알레르기검사'가 있었기 때문이다. 언젠가 한 번쯤은 해봐야지 했는데 내가 원하던 항목이 있어 주저 없이 이곳으로 선택했다. 

 

그렇게 대망의 건강검진 당일. 졸린 눈을 겨우 떠서 여의도에 있는 한국의학연구소로 향했다. 오전 검진은 아침 7시에서 9시반까지 건강검진 센터로 가야 한다. 후기를 보니 7시에 맞춰 가야 검사할 때 많이 대기하지 않고 금방 끝난다고 해서, 나도 7시에 맞춰가려고 했으나 도저히 눈이 안 떠져서 미적대다가 8시 15분에 집에서 나왔다. 

 

출근 시간이라서 그런지 버스에 사람이 꽉 차 있었다. 이런 만원 버스는 정말 오랜만이었다. 남들 출근할 때, 나의 건강을 위해 건강검진을 받으러 가다니 뭔가 부지런한 갓생을 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양복을 입은 여의도 증권맨들과 나란히 걸으며 건강검진 센터가 있는 BNK금융타워에 도착했다.

 

기모 트레이닝복을 입고, 대리석이 번쩍번쩍한 빌딩에 들어가려니 기분이 이상했다. 이질적인 존재가 된 느낌. 다행히 '한국의학 연구소' 전용 엘리베이터가 있어서 양복맨들 사이로 엘베를 타는 일은 없었다. 같이 탔으면 좀 뻘쭘할 뻔.

건강검진 센터에 도착한 시간은 8시 43분. 평일이라 사람이 별로 없을 줄 알았는데, 어우 세상에 생각보다 정말 많았다. 접수할 때, 내 앞에 7명이 있었는데 금방 빠졌다. 5분 정도 기다려 접수를 받고, 옷을 갈아 입었다. 속옷은 팬티만 입고, 상하의 가운을 입었다. 검진 방식은 검사실 앞에 있는 태블릿에 카드키를 찍어 대기를 걸어놓은 다음, 내 순서가 되면 검사실에 들어가 검사를 받는 식이었다. 

 

프리미엄 검진은 기본 검진에 몇 가지가 더 추가된 건데, 나는 '알러지 검사'와 '자궁초음파', '갑상선 초음파 및 골밀도 검사'를 선택했다. 알레르기 검사는 위에 말한 이유 때문이고, 갑상선은 평소에 목에 불편함을 자주 느끼기 때문이다. 한때 후두염도 달고 살았던 터라 혹시나 하는 마음에 선택했다. 또 자궁초음파는 서른이 넘어 필요할 거 같아서 했다. 특히 방송작가들이 자궁이 그렇게 아프다. 자궁에 문제 생기는 걸 하도 많이 봐서 그런지 항목을 고를 때 제일 첫 번째로 선택했다.

 

사람마다 선택한 검진 항목이 다르기에, 검사받는 순서도 다른데 나는 아래의 순서대로 검사를 받았다. 

 

-일반 촬영

-혈압

-시력

-심전도

-채혈

-자궁경부암

-문진

-골밀도

-안저, 안압

-유방촬영

-초음파 (갑상선, 복부, 자궁)

 

원래는 위 내시경도 신청했으나 이날 컨디션이 안 좋아서 취소했다. 사실 나는 채혈할 때 심한 어지러움을 겪는다. 작년에 국가검진할 때 앉아서 채혈했다가 어지러움 때문에 고생했는데 당시 검사해주던 선생님이 "다음에 채혈할 때는 꼭 누워서 받겠다고 하세요. 채혈 누워서 받을 수도 있어요!"라고 말했던 게 떠올라, 이번엔 채혈하러 들어가자마자 누워서 받을 수 있냐고 물어봤다. 

 

그런데 검사해주는 선생님께서 혈관이 좋아서 괜찮을 거 같다고, 일단 앉아서 채혈한 후 어지러우면 옆에 베드에 바로 눕는 걸로 하자고 하셨다. 그런데 다행히 이번에는 저번처럼 바로 어지러움이 오지 않았다. 채혈해 주는 선생님께서 피를 잘 뽑은 거 같았다. 하지만 속은 여전히 약간 울렁거려서 옆에 배드에서 잠시 쉬었다가 다음 검사를 받았다. 

 

다음 검사는 자궁경부암 검사였는데, 국가검진할 때는 별로 안 아팠는데 이번에는 엄청 아팠다. 겨우 참고 옷을 다시 갈아입는 순간 갑자기 시야가 흐려지기 시작했다. 검사실을 나와 대기 의자에 앉는데 속이 안 좋고, 눈앞이 깜깜해지면서 어지러웠다. 이럴 경우 잠시만 쉬면 나아져서 혼자 참아보려 했는데 도저히 눕지 않으면 안 될 거 같아서 복도에 있는 선생님 아무나 붙잡고 S.O.S 신호를 쳤다. 

 

"서.. 서생님.. 제.. 제가 어지러워서요.. 누울 곳이 있나요..."

 

겨우 한 마디 한 후, 나는 의자에 다시 앉아 옆으로 누웠다. 사람들 이목 집중되는 행동하는 거 정말 싫어하는데 아플 땐 장사가 없나 보다. "나 몰라.." 하는 심정으로 대기 의자에 옆으로 풀썩 누워버렸다. 도저히 상체를 일으킬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1분 정도 지나니 검은 유니폼을 입은 선생님께서 달려오셔서 나를 부축하여, 아까 누워있었던 채혈실 배드에 나를 눕혔다. 누워있으니 좀 살거 같았다. 곧이어 선생님이 다시 들어오더니 베개를 다리에 놓아주셨다. 어지러울 때는 머리를 아래로 하고, 다리를 높이면 회복이 잘 된다면서 말이다. 너무 친절하게 돌봐주셔서 감동이었다. 

 

이후 다시 검은 유니폼 선생님께서 오셔서, 내 안색을 살펴주셨다. 아까는 창백했는데 지금은 혈색이 돌아왔다며 다행이라고 했다. 그리고 위 내시경을 취소하는게 어떠냐고 했다. 오늘처럼 이렇게 컨디션 안 좋은 날에 수면 내시경하는 건 좀 위험하다면서 말이다. 그래서 아쉽지만 위 내시경은 다음으로 미뤘다. 1년 안에 '한국의학연구소'에 전화해 위내시경만 다시 예약 잡으면 된다고 했다. 다음 쉬는 시즌에 꼭 해야겠다. 

 

어지러움이 가시자마자 다시 일어나 검진을 다시 받으러 갔다. 그 다음 검진은 문진, 고밀도, 안압안저라서 로딩 없이 쓕쓕 지나갔다. 그런데 유방촬영할 때 위기가 다시 왔다. 유방 촬영의 어려움을 많이 들어서 어느 정도 마음의 준비는 했는데, 생각보다 정말 아팠다. 가슴에 너무 세게 압력을 줘서 그런지 검사 후 다시 한번 어지러움이 왔다. 마스크 때문에 호흡도 잘 안 되는데 긴장도 많이 해서 그런 거 같다. 심한 어지러움이 아니라 선생님들에게 도움을 청하진 않고, 비상엘리베이터 앞에 쪼그려 앉아 천천히 숨을 쉬면서 안정을 찾았다. 다행히 어지러움을 금방 사라졌다. 

 

이놈의 몸뚱이는 건강검진 한번 받기도 참 힘들다. 

남들도 다 이러는 건지, 나만 이런 건지.

중간에 쉬면서 검진을 받아서 그런지, 위 내시경을 안 했음에도 검진 시간이 3시간 정도 걸렸다. 

 

검진이 끝나니 식권을 줬다. CU에서 죽/음료수 교환 or 카페에서 샌드위치/음료 교환 or 황태해장국 교환할 수 있는 식권이었는데 나는 황태해장국을 선택했다. 매장에서 먹으면 반찬이랑 먹을 수 있지만 포장을 하면 반찬은 주지 않는다. 그래도 집에 가서 편하게 밥 먹고 바로 자고 싶어서 포장을 했다. 

 

공복에 피곤함이 더해져서 그런지 반찬 없이도 꿀맛이었다. 살기 위해 허겁지겁 밥을 말아 드링킹한 후, 배부른 배를 두들기며 잠자리에 들었다. 오후 1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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