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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순이 일상

백수가 된 방송작가는 목욕을 한다. 이런 걸 리추얼이라고 하던데?

by 집작가 2023. 1.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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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계 특성상 자주 백수가 되는 나는 '프로 백수'이자 '프로 이직러'이다. 10여 년 동안 방송작가 생활을 하며, 꽤 많은 백수 생활을 버티면서 생긴 나만의 리추얼이 있다. 바로 목욕이다!

2년 전 안정적인 레귤러 프로그램에서 나온 나는, 이후 여러 프로그램을 전전하며 일을 하고 있다. 짧게 여러 가지 프로그램을 하면 다양한 경험과 인맥을 쌓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또 팀을 옮길 때마다 생기는 공백기에 다음 콘텐츠를 위한 충분한 인풋을 할 수 있어 즐겁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 수록 점점 줄어드는 통장 잔고와 동료 작가들의 잘 나가는 프로그램을 볼 때면 마음이 초조해진다. 그리고 이상하게 내가 일을 찾을 때만 마땅한 일자리가 없다. 꼭 내가 일하고 있을 때만 좋은 일자리가 생기고, 놀 때는 코빼기도 안 보이다.

그렇게 '다음 일은 언제할 수 있을까.' '이대로 공백기가 길어지면 어떡하지'라는 불안함이 나를 감싸기 시작하면, 어김없이 나는 욕조에 물을 받는다. 따뜻한 물에 러쉬 입욕제를 넣고 물색이 변하는 걸 멍하니 바라본다. 그리고 따뜻한 물에 몸을 담그고 향기를 맡으며 불안한 마음을 릴랙스 한다.


좀 더러울 수 있지만 사실 바쁘게 일을 하다 보면 대충 씻고 잘 때가 많다. 퇴근하고 집에 오면 너무 지쳐 물샤워만 대충 한다. 내 몸을 꼼꼼하게 청결하게 유지하는 건 의외로 정말 어려운 일이다. 씻는 것도 이렇게 노동인데, 로션을 바르는 건 사치다. 물기만 겨우 닦고 침대에 누워 참을 청하기 바쁘다.

이렇게 정신없이 몇 개월을 거쳐 프로그램을 끝내고 나면, 훈장처럼 퍼석퍼석한 피부가 남는다. 요즘은 마스크 때문에 얼굴에 마스크 라인 때라 뾰루지도 생겨있다. 그래서 나는 백수 기간이 오면 스스로를 돌보는 리추얼로 목욕을 한다. 그동안 바쁘다는 핑계로 돌보지 못한 내 몸을 깨끗하게 리프레쉬하는 거다.

각 잡고 목욕을 하면 생각보다 과정이 많다. 몸도 불리고, 때도 밀고, 비누로 한 번 더 씻어주고, 각질도 제거하고, 끝나면 로션도 발라줘야 한다. 목욕이라는 행위에 집중하다 보면 욕실 가득 차는 따뜻한 수증기에 정신이 몽롱해지면서 어느새 심란했던 마음은 가라앉는다. 그리고 이내 '이만하면 스스로를 잘 돌보고 있지 않나?' 싶은 뿌듯함이 몰려온다. 목욕이라는 행위를 통해 스스로를 돌보고, 위로하고, 정신을 가다듬는 것이다.


가뜩이나 백수 생활할 때는 돈을 한 푼이라도 더 아끼는 게 중요한데, 목욕은 집에서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다는 점에서 가성비도 좋다. (뭐 다만 수도세는 좀 더 나오겠지만) 욕조가 없으면 몸 불리는 과정은 빼고, 좀 더 정성스레 때를 미는 과정을 넣으면 된다. 입욕제 대신 향기가 좋은 스몰럭셔리 샤워젤을 쓰면 힐링이 된다.

참고로 요즘 내가 기분 전환할 때 쓰는 목욕 제품은 이 두 가지이다. 왼쪽은 <논픽션 상탈크림 바디워시>와 <UUU유유유 내추럴 솝바>이다. 논픽션 바디 워시는 생일 선물로 받았는데 향이 정말 고급지다. 이걸로 목욕하면 욕실 가득 향기가 가득 차서 기분이 좋아진다. 향기를 머금은 풍성한 거품을 물로 씻으면, 몸에 붙어있던 먼지뿐 아니라 더러운 기분까지 깨끗이 씻겨내리는 기분이다.

유유유 비누는 한창 스트레스로 몸에 트러블이 올라왔을 때 남편이 선물해 준 거다. 여드름 피부에 좋은 비누를 찾아서 주문했다고 한다. 찾아보니 동의보감에 나오는 유근피가 주재료인 비누로 계면활성제와 화학성분이 안 들어간 천연비누라고 한다. 거품이 풍성하게 나는데, 씻었을 때 과하게 건조해지지 않아서 좋았다. 개운한데 건조하지 않은 느낌. 피부에 써본 느낌이 좋아서 화장 안 한날 폼클렌징 대신 써봤는데 순하고 좋았다. 이제 1개 남아서 아껴 쓰는 중이다.


이번 백수 기간 동안에는 아직 제대로 된 목욕을 하지 않았다. 다음 시즌에 일할 프로그램이 정해져 있어서 그런가, 마음이 심란하지 않아서 그런 거 같다. 이제 업무 복귀하기까지 시간이 얼마 안 남았는데, 곧 하루 날 잡아서 목욕 한 번 제대로 해야겠다. 새해도 되었으니! 개운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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